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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시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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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본격적인 혁명의 시작 === 1960년 10월 10일, 루이나 전역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전국 동시다발 시위가 발생하며, 10.24 시민혁명은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는 그 직전인 10월 8일 나보레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레미 바슐레 사망 사건을 계기로 축적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였으며, 단일 사건 중심의 항의가 아니라 체제 그 자체를 부정하는 전면적인 정치 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한 순간이었다. 이날 오전, 수도 벨포르에서는 학생·교직원·노동자·성직자 단체가 각기 다른 경로에서 시청 앞 광장으로 집결하였고, 오후 1시경 기준 시위 인원은 약 21만 명에 달했다. 대부분은 자발적 불참 선언을 통해 등교 및 출근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왔으며, 각 단체는 흰 천에 직접 손으로 쓴 구호들을 들고 있었다. "더 이상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다", "헌법을 되돌려 달라", "총칼보다 투표함을!" 등의 구호는 분명히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메시지였고,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애도보다 정치적 책임을 묻고 새로운 정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시위의 핵심을 이루었다. 비슷한 시각, 오보레와 크레테, 나보레, 롱비치, 사보레, 에포르 등지에서도 각각 수천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시민이 도심지로 몰려나왔다. 노동조합들은 오전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했으며, 일부 공장에서는 노동자 평의회가 형성되어 현장 통제를 넘겨받는 사례도 나타났다. 각 지역 시청과 도청, 군청 앞에는 시위대가 모여 ‘국민 자치 선포식’을 열었으며, 일부 청년 단체는 자신들의 시위를 '''‘임시시민의회’'''로 명명했다. 정권은 이날 오전부터 사전 대비에 나섰지만, 경찰력은 시위 규모를 감당하지 못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투경찰 중대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 명령을 거부하거나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수도 방면의 보병 제4사단은 평소와 달리 장비를 해제한 채 병영에 머물며 사실상 출동 명령을 거부했고, 그 내부에서는 "민중을 향해 총을 들 수 없다"는 장교 성명이 회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루이나 중앙방송(RBC)은 이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국가 전복을 기도하는 무허가 불법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으나, 이는 오히려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같은 날 오후 5시경, 벨포르 시내 전광판에는 “오늘의 외침은 내일의 헌법이 된다”는 문구가 등장했고, 이는 SNS, 전단, 벽보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시위대의 상징적 구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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